목차
서문
이 책은 오픈 커뮤니티의 스캠 경제에 관한 책이다. 열려 있으라고 지은 방 안에서 사람들을 속여 돈과 접근 권한과 신뢰를 챙겨 사라지는, 거대하고 산업화되었으며 놀랍도록 합리적인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다. 형태는 다양하다. 사칭된 관리자, 딥페이크로 재현된 창업자, 로맨스와 투자를 엮어 몇 달을 공들이는 사기, 진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합성 커뮤니티(synthetic community). 그러나 그 다양함의 밑바닥에는 단 하나의 비즈니스가 있다. 이 책은 그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가 운영하는지, 나머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그리고 영리한 사람들이 20년 동안 영리한 방어책을 쏟아부었는데도 왜 사라지지 않았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끝에 이르면, 이 경제를 정말로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 업계가 마침내 수렴하고 있는 방향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단 하나의 은탄환이 아니라, 겹겹이 쌓이면 스캠 경제가 값싸게 응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는 접근법들의 가족이다.
텔레그램은 거의 모든 장에 등장한다. 그 이유를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두고 싶다. 이유 자체가 이 책의 논증이지, 변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은 크립토와 웹3(Web3)가 살아가는 주요 무대 중 하나다. 유일한 무대는 아니지만 중심 무대다. 프로젝트들이 커뮤니티를 세우는 곳, 창업자와 트레이더와 표적이 모두 모이는 곳, 토큰이 움직이고 거래가 성사되는 곳이다. 동시에 신원이라는 개념이 플랫폼 차원에서 가장 얇은 곳이기도 하다. 표시 이름 하나, 버리는 전화번호 하나면 끝이다. 누구든 될 수 있고, 동시에 천 명의 누군가가 되는 데에도 사실상 비용이 들지 않는다. 역사상 가장 즉각적으로 이전 가능한 가치를, 방 안에 실제로 누가 있는지 가장 알지 못하는 방에 넣어 보라.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실험실이다. 스캠 경제가 최대 출력으로 가동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인터넷에서 가장 선명한 장소다. 어떤 현상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연구하려면 조건이 가장 극단적인 곳으로 가야 하고, 이 현상에게 그곳은 텔레그램이다. 그러니 텔레그램은 나의 무대이자 렌즈다. 실험실이지, 표본이 아니다.
표본은 그보다 더 일반적이고 더 중요한 무엇이다. 쉬운 진입, 약한 신원, 그리고 방 안의 가치 있는 무언가. 이 세 가지 재료를 한데 갖춘 오픈 커뮤니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셋이 모이면 스캠이 생기고, 이어서 포식적 경제 전체가 생긴다. 그 방이 텔레그램 그룹이든, 디스코드 서버든, X(구 트위터)의 답글창이든, 왓츠앱 브로드캐스트 목록이든 마찬가지다. 어떤 패턴이 정말로 텔레그램에만 해당한다면 그때마다 그렇다고 밝히겠다. 그러나 앞으로 읽게 될 내용의 대부분은 특정 플랫폼에 국한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가 어느 앱에 서 있었든 결국 우리를 찾아왔을 문제다.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단 하나의 질문이 깔려 있고, 여기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 질문을 끝까지 품고 가기 바란다. '지금 이 방에 누가 있는가?' 모든 스팸 메시지, 모든 사칭, 모든 가짜 무료 증정 사기(giveaway scam), 모든 합성 '고객지원 상담원', 조작된 커뮤니티 안의 조작된 동료 하나하나는, 결국 오픈 커뮤니티가 대개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고드는 착취다. 방은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진짜 사람 한 명과, 한 명의 운영자가 뒤집어쓴 천 개의 꼭두각시를 구별하지 못한다. 인터넷 역사의 대부분 동안 우리는 이것을 그때그때 때우면 되는 불편쯤으로 취급해 왔다. 나는 이것이 게임의 전부라고 주장하려 한다.
이 책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제목만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인터넷 크립토 채널의 절반쯤에는, 호된 수업료를 치르고 교훈을 배운 사람들 특유의 약간 다급한 강조체로 쓰인 조언 한 줄이 맨 위에 고정되어 있다. 관리자는 절대 먼저 DM하지 '않습니다'. (옮긴이 주: 한국 크립토 커뮤니티의 고정 공지 "운영진은 절대 먼저 DM을 보내지 않습니다"가 정확히 이것이며,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 《관리자는 절대 먼저 DM하지 않습니다》도 여기서 왔다.) 좋은 조언이다. 동시에 자백이기도 하다. 커뮤니티가 입구에서부터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창업자와,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뒤집어쓴 사칭범을 구별할 수 없다고. 그래서 구별하기를 포기했으니, 대신 아무도 믿지 말아 달라고. 그 고정 공지는 이 책 전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이다. 번성하는 오픈 커뮤니티가 새로 온 사람을 맞이하는 첫인사가 "아무것도 믿지 마세요"라는 호소로 전락한 풍경. 이 책의 제목은 거기서 왔고, 이어지는 장들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긴 대답이다.
약속
독자의 시간과 맞바꾸어 내가 내놓는 것은 이렇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오픈 커뮤니티의 스캠 경제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인다. 하나씩 때려잡아야 할 성가신 일들의 흩어진 무더기가 아니라, 머릿속에 형태를 담아 두었다가 어디서 마주치든 알아볼 수 있는 하나의 산업으로 보인다. 세 개의 뚜렷한 시대로 나뉜 역사를 알게 되고, 각 시대마다 고유한 경제학과 고유한 대표 공격이 있음을 알게 된다. 진열대 위 상품의 공급망을 이해하듯 스캠 뒤의 공급망을 이해하게 된다. 도구, 노동, 가격, 마진까지. 업계가 출시한 모든 방어책이 왜 번번이 똑같은 벽에 부딪히는지를 기술적인 세부 수준에서 알게 된다. 그리고 진짜 최종 국면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가 그것을 왜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는지, 그런데도 왜 아직 도래하지 않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큰소리처럼 들릴 만한 주장이다. 이 책은 구체성으로 그 값을 치른다. 특정한 스캠, 특정한 도구, 특정한 액수를 보여 줄 수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한다. 이 분야의 통계 가운데 일부는 실재하고 출처도 탄탄하다. 다른 일부는 연구로 분장한 업체 마케팅인데, 밖에서 보아 어느 쪽인지 언제나 가려낼 수 있는 척은 하지 않겠다. 어떤 수치가 자기 제품이나 사용자 규모를 설명하는 회사에서 나온 것이라면, 회사 자체 발표이며 감사받지 않은 수치라고 그대로 표시하겠다. 실제로 그것이 그 수치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세 시대의 여정
이 책은 세 시대를 통과하며 움직이고, 그 움직임 자체가 논증이다. 시대와 시대의 경계에는 두 개의 발명이 서 있다. 먼저 암호화폐, 다음으로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대중화다. 각각이 스캠이 무엇일 수 있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정의했다. 그래서 시대는 이 두 문턱을 기준으로 깔끔하게 나뉜다. 크립토 이전 시대, 크립토 시대, 그리고 우리가 막 들어선 AI 시대다.
첫 번째 시대, 크립토 이전 시대의 방 안 소음은 대체로 그냥 소음이었다. 성가시고 물량은 엄청났지만, 커뮤니티 안에서 위험한 경우는 드물었다. 취미나 코드 이야기를 나누는 채팅방에는 훔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 인터넷이 안전했다는 말은 아니다. 같은 시기에 뱅킹 트로이목마와 피싱은 이미 실제 계좌를 털고 있었다. 다만 그 포식은 받은편지함과 브라우저에 살았고, 잘못된 이체를 되돌릴 장치를 갖춘 은행 시스템 안의 돈을 노렸다. 열린 방 안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이 방에 누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방 안의 판돈이 낮아 그 질문이 중요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은 언제나 중요했다. 우리 눈에 아직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두 번째 시대, 크립토 시대에 가치가 도착했다. 크립토 커뮤니티들은 막대하고 즉시 이전 가능한 가치를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열린 방에 넣었고, 소음은 포식으로 변했다. 성가심에 불과했던 것이 진짜 크립토를 털어 가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의 진짜 형태가 마침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공격의 배후에는 계정 하나가 아니라 수백 개를 굴리는 단일 운영자가 있다. 그 하나하나가, 방으로서는 진짜 사람과 구별할 길이 없는 별개의 가짜 페르소나다. 새 계정을 만드는 비용이 거의 0이기 때문에, 한 인간이 동시에 천 명의 낯선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시빌 문제(Sybil problem)다. 여러 개의 인격을 지녔던 한 사람의 유명한 사례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리고 한번 모든 것의 밑바닥에서 이것을 보고 나면, 다시는 못 본 척할 수 없다.
세 번째 시대, AI 시대에는 기계가 인간 행세를 할 만큼 좋아졌다. 2022년 말부터 대중의 손에 들어온 유능한 대규모 언어 모델은 마지막 남은 확실한 단서, 곧 언어 그 자체를 지워 버렸다. 단일 운영자가 유창하고 자율적이며 24시간 돌아가는 페르소나 수천 개를 굴릴 수 있게 되었다. 나쁜 콘텐츠를 골라내는 데 기대던 탐지는 작동을 멈췄다. 콘텐츠가 더 이상 나빠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터와 위조 사이의 군비 경쟁은, 엄밀하고 증명 가능한 의미에서, 이길 수 없는 게임이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다. 시작된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앞의 두 시대가 쌓아 올린 모든 방어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 이 시대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초입에 서서 윤곽이 잡혀 가는 것을 지켜보는 중이고, 바로 그래서 '다음에 무엇이 오는가'라는 질문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세 시대가 쌓아 올리는 것은 하나의 점점 강해지는 증명이다. 메시지를 검사해서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정말로 검사해야 할 것은 메시지 뒤의 행위자다. 그것이 비용이 들고 오래 지속되는 신원인지, 그 신원이 신뢰를 쌓아 왔는지, 그 뒤에 유일무이한 사람이 서 있는지, 그리고 갈수록 중요해지는 질문으로, 그것이 저지른 일에 누가 책임을 지는지. 책의 후반부는 바로 이 질문들을 묻기 위해 업계가 수렴하고 있는 접근법들의 가족을 다룬다. 왜 그것이 또 하나의 땜질이 아니라 구조적 치료인지, 왜 부품들은 마침내 존재하는지, 그런데도 왜 아직 조립되지도 채택되지도 않았는지, 그리고 만약 조립된다면 오늘 우리가 아는 스캠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스포일러는 방향까지만 하겠다. 신뢰할 수 있는 신원이 비싸지고, 평판이 실체를 갖고, 행위자가 책임을 지게 되면, 산업형 사기를 수지맞는 장사로 만들어 주던 경제학이 뒤집힌다. 그러면 오늘 받은편지함과 단체 채팅방을 채우는 것들 대부분이 멸종한다.
이 책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이것은 위협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하나의 세계관에 능통해지게 만드는 것, 그래서 앞으로 평생 어떤 오픈 커뮤니티에 들어서든 그곳이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방어 구축 매뉴얼이 아니다. 설정 레시피나 제품 구매 가이드는 나오지 않는다. 텔레그램의 전기도, 그 창업자들의 인물 평전도 아니다. 한 회사의 연혁을 서술하는 장은 없다. 학술서도 아니다. 다만 논증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진지한 학술 연구에 기댄다. 목소리는 학술지보다 지친 보안 엔지니어의 블로그에 가깝다. 견해가 뚜렷하고, 구체적이고, 인용이 풍부하고, 누구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것의 한계 앞에서 정직하다.
왜 나인가
나는 폴카닷(Polkadot) 위에서 여러 해 개발해 온 엔지니어다. 그 말은 곧, 열려 있고 가치는 높은데 신원은 허술한, 바로 이 책이 다루는 종류의 커뮤니티 안에서 여러 해를 살았다는 뜻이다. 크립토 스캠에 대해 쓰겠다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소프트웨어를 세상에 내보내는 일을 도우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일한 모든 커뮤니티가, 모든 그룹과 서버와 채널이, 같은 전쟁을 치렀고, 같은 순서로 같은 전투에서 졌으며, 같은 고장 난 방어책에 손을 뻗었다. 그 광경이 충분히 여러 번, 충분히 여러 곳에서 반복되는 것을 지켜본 뒤에는, 패턴이 더 이상 성가신 일들의 연속으로 보이지 않았다. 형태를 알아낼 수 있는, 아직 풀리지 않은 단 하나의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 형태를, 독자 역시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적어 내려는 나의 시도다.
이어지는 내용의 반감기에 대해 한마디 해 두겠다. 스캠 경제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 문장들이 활자가 된 뒤에도 새로운 공격, 새로운 도구, 새로운 수치가 계속 도착할 것이다. 여기 실린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 연구는 빠르게 움직이는 표적의 스냅숏으로 읽기 바란다. 지금 이 순간의 점수판이 아니다. 오래 남는 것은 그것들이 보여 주는 구조이고, 구조가 이 책의 요점이다.
다만 역사로 들어가기 전에, 이 모든 것이 결국 무엇이 되었는지부터 보여 주고 싶다. 딥페이크 화상 통화, 합성 시민으로 채워진 합성 커뮤니티, 한 해 신고된 크립토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72억 달러에 이르는 산업. 그 전부가 단 하나의 방에서, 단 하루의 오후에, 모든 것을 제대로 한 단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만 안다면, 이 책의 논증 전체가 이미 그 사건 하나에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시작한다. 길고 조용한 태초가 아니라, 심판의 순간에서부터.
프롤로그

모든 것을 앗아간 메시지는 친구에게서 왔다.
토르체인(THORChain) 프로토콜의 공동 창업자 J.P. 토르(J.P. Thor)의 이야기를 들을 때 사람들이 흘려 넘기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고, 사실은 이것만이 중요한 대목이다. 연락처는 진짜였다. 이름도 맞았다. 대화 기록도 맞았다. 신중한 사람이 낯선 이를 믿기 전에 확인하는 모든 항목이 확인을 통과했다. 상대가 낯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계정이 낯설지 않았다. 계정의 주인은 토르가 아는 사람이었고, 그의 텔레그램은 어느새 조용히 탈취되어 있었다. 빌려 입은 신원 안에서 공격자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은 대화를 영상 통화 쪽으로 슬며시 몰고 갔다. 워낙 매끄러워서 오히려 꼼꼼한 업무 절차처럼 읽히는 종류의 단계 상승이었다. 마침내 연결된 통화 화면에는 얼굴이 있었고, 목소리가 있었다. 둘 다 합성이었다. 2025년 9월 9일의 일이다. 계산이 끝났을 때, 약 135만 달러가 사라져 있었다.
그 방 하나에서 시야를 넓히면, 같은 패턴이 머리로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반복된다.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 집계에 따르면 북한의 공격 조직들은 2025년 한 해에만 약 20억 2,000만 달러어치의 암호화폐를 훔쳤다. 전년보다 절반 이상 늘어난 수치이고, 대부분은 단일 초대형 거래소 해킹인 14억 6,000만 달러 규모의 바이비트(Bybit) 사건에서 나왔다. 그러나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정작 두려워해야 할 몫은 따로 있다. 연구자들이 블루노로프(BlueNoroff)라는 이름으로 추적하는 조직은 토르의 크립토를 앗아간 것과 정확히 같은 수법으로 3억 달러 이상을 빼돌렸다. 신뢰받는 계정, 딥페이크로 꾸민 줌(Zoom)이나 팀즈(Teams) 회의로의 전환, 그리고 낯선 얼굴이었다면 절대 들어주지 않았을 부탁을 해 오는, 아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는 얼굴. 수천 건의 더 작은 사건에서는 목소리만으로 충분했다. 팟캐스트나 음성 메시지에서 긁어모은 단 3초 분량의 음성을 시중의 복제 서비스에 돌리는 것만으로, 보석금을 달라며 우는 딸이 만들어졌고 송금을 승인하는 CFO가 만들어졌다. 트렌드 마이크로(Trend Micro)가 FBI의 2025년 통계를 바탕으로 집계한 결과, 그해 음성 복제 조난 사기로 인한 손실만 500만 달러가 넘었다. 그마저도 집계에 잡힌 몫일 뿐이다. (옮긴이 주: 한국 독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그림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보이스피싱이 정확히 이 수법의 원형이다.)
한 번 더 시야를 넓히면, 이번에는 지반 자체가 움직이고 있다. 2025년 텔레그램은 4,350만 개의 그룹과 채널을 차단했다. 계정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말이다. 체크 포인트 리서치(Check Point Research)가 플랫폼이 직접 공개한 단속 수치를 집계한 결과다. 2024년 8월 텔레그램 창업자가 프랑스에서 체포되고 회사가 사법 당국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 뒤, 하루 단속 건수는 기존의 1만3만 건 수준에서 8만14만 건이라는 상시 구간으로 뛰어올랐고, 절정에 달한 날에는 50만 건을 넘겼다. 악성 텔레그램 그룹, 곧 가짜 알파 채널과 에어드랍 함정과 위조 인증 봇은 크립토 사기 방지 업체 스캠 스니퍼(Scam Sniffer) 집계로 2024년 11월부터 2025년 1월 사이 약 2,000퍼센트 폭증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떠받치는 손실은 더 이상 누구의 장부에서도 반올림 오차가 아니다. FBI 인터넷범죄신고센터(IC3)는 2025년 신고된 크립토 투자 사기 손실을 약 72억 달러로 집계했다. 이 범주를 지배하는 것이 피그 부처링(pig butchering, 돼지도살 사기), 곧 바로 이런 방들 안에서 살아 숨쉬는, 관계를 공들여 쌓아 올리는 끈질긴 신용 사기다.
이것은 성가신 골칫거리의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아직도 '스캠'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그 말이 어설픈 속임수 하나, 낯선 이의 이메일 한 통, 누르지 말았어야 할 링크 하나를 가리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제는 그 단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되었다. 사기를 제품으로 생산하는 산업이 된 것이다. 이 산업에는 직원이 있고 자본이 있다. 서로에게 도구를 임대하고 서로의 수익금을 세탁해 주는 전문 업체들로 조직되어 있고, 연구개발 주기는 뒤쫓는 방어자들보다 빠르다. 이 산업은 훔친 API 키와, 스트리밍 구독료 수준의 가격표가 붙은 탈옥된 언어 모델 위에서 돌아간다. 존재한 적 없는 전문가들과 대본에 불과한 동료 투자자들로 채워진 합성 커뮤니티(synthetic community) 위에서 돌아간다. 그리고 점점 더, 자판을 두드리는 인간이 단 한 명도 없이 돌아간다.
그런데 토르의 이야기에는,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거의 모든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딥페이크와 수십억 달러짜리 헤드라인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민망할 만큼 오래된 뼈대다. 메시지가 도착한다. 믿는 사람이 보낸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모든 것, 곧 손실과 세탁과 파멸은 맨 꼭대기에 놓인 검증되지 않은 가정 하나에서 흘러나온다. 기계 장치는 눈부시게 화려해졌다. 상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바로 그 상처다.
나는 방어자들이 그 기계 장치에는 온갖 창의력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상처에는 거의 아무것도 쏟지 않는 모습을 여러 해 동안 지켜봤다. 우리는 단어를 읽는 필터를 만들었고, 기계는 우리보다 나은 단어를 쓰는 법을 배웠다. 계정에 평판 점수를 매겼더니, 공격자들은 커피 한 잔 값으로 새 계정 천 개를 찍어냈다. 공유 차단 목록을 만들고, 행동 모델을 만들고, 캡차(CAPTCHA)와 공격 대응 모드 토글과 정확도 99.7퍼센트짜리 모더레이션(moderation) 봇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홍수는 계속 불어났다. 그 도구들 하나하나가 전부, 애초에 진짜 질문이 아닌 질문에 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물었다. '이 메시지는 스팸인가?' J.P. 토르의 135만 달러를 지켜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질문은 거의 묻지 않았다.
지금 이 방에 누가 있는가?
어느 계정이냐가 아니다. 어떤 표시 이름, 어떤 아바타, 어떤 인증 마크처럼 생긴 체크 표시냐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전부 의상이고, 의상은 값싸다. '누구'냐다. 그 단어들 뒤에 있는 인간, 혹은 인간의 부재. 스스로 주장하는 그 사람이 맞는지. 신뢰할 만한 일을 하는 모습을, 그 누구에게든, 단 한 번이라도 보인 적이 있는지. 오픈 커뮤니티, 곧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신원이란 스스로 고른 아이디에 불과하며 가치가 방 안에 놓인 채 털리기를 기다리는 곳에서,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답이 있었던 적이 없다. 우리는 그저 오랫동안 답하지 않고도 무사히 지나왔을 뿐이다. 인터넷 역사의 대부분 동안, 그 방들은 털 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암호화폐가 도착했고, 이어서 기계가 인간 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년 동안 답하지 않은 대가를 청구하는 고지서가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이 책은 그 고지서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세 시대를 관통한다. 방 안에 크립토라는 것이 아예 없던 길고 조용한 시대, 크립토가 들어오면서 소음이 포식으로 변한 폭력적인 10년, 그리고 공격자가 더 이상 인간일 필요조차 없어진 기이한 현재. 이 책은 대부분의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경제를 둘러보는 여행이며, 그 무대는 이 경제가 가장 크고 가장 흉포하게 자라난 곳, 같은 규모의 어떤 플랫폼보다 신원 계층이 얇은 곳이다. 그리고 이 책은 결국 하나의 주장이다. 우리가 계속 묻기를 거부해 온 그 질문이야말로 오래가는 답을 가진 질문이라는 것. 그 답의 조각들은 이미 20년 전부터 흩어진 채 존재해 왔다는 것. 그리고 그 조각들이 마침내 조립되고 채택된다면, 우리가 지금부터 걸어서 둘러볼 이 산업은 멸종한다는 것.
그러나 그 질문은 이런 기계 장치 어디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며, 질문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이해하기 전에는 답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질문은 인터넷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낯선 사람들이 트인 곳에 모이는 모든 장소의 것이다. 광장, 시장, 커피하우스처럼 누구든 걸어 들어올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정말 누구인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는 곳 말이다. 그래서 기계 장치보다 먼저, 우리는 그곳으로 돌아간다. 텔레그램 그룹도 크립토 채널도 아닌, 가장 오래된 열린 방으로. 메시지를 실어 보낼 전선이 생기기 한참 전부터 '지금 이 방에 누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온 그 방으로. 우리는 거기서 시작한다. 판돈이 아직 낮아서, 아무도 그 답을 맞힐 필요가 없던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