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광장의 문제

북적이는 광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열린 방에 들어선 것이다. 아무도 이름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름을 확인할 문이 없고, 이 공간에는 경계가 없으며, 문턱을 지키는 사람도 없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그냥 길에서 걸어 들어왔고, 같은 방식으로 도착한 낯선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사람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과 거래하고 흥정하고 계약을 맺으러 광장에 온다. 그 말은 이곳에 돈과 신뢰가 가득하다는 뜻이다. 둘 다, 뭔가를 해내려면 낯선 이에게 먼저 내밀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 개방성이야말로 광장의 매력 전부이고,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회를 챙기러 오는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다. 사기꾼이라 부르자. 그는 열린 방에서 일한다. 표적이 거기 있기 때문이고, 열린 방은 그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군중 속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는 이름을 하나 댄다. 그 이름은 아무 의미가 없다. 뒤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기록도 없고, 평판도 없고, 오늘 자신을 재무 상담사라고 소개하는 남자가 지난달 다른 이름으로 누군가의 노후 자금을 털어 간 바로 그 남자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광장이 그에게 등을 돌리면 그는 떠나고, 다음 마을 광장에서 다시 재무 상담사가 된다. 그의 사업 모델 전체는 열린 방에 관한 단 하나의 사실 위에 서 있다. 낯선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는, 낯선 사람들을 서로 구별할 수 없다는 것.
열린 방이 존재한 이래로 그는 줄곧 이 수법을 써 왔다. 광장은 이 문제에 가장 오래된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광장은 그런 방들 가운데 가장 낯익은 하나일 뿐이다. 공원, 호텔 로비, 컨퍼런스장, 기차를 기다리는 붐비는 승강장, 시장 좌판까지, 모두 같은 모양이다. 이들 모두를 규정하는 특징은 '열려 있다'는 것이다. 회원 명부도 없고, 문 앞에서 명단과 이름을 대조하는 사람도 없다. 그 개방성은 실수가 아니라 존재 이유 그 자체다. 광장이 가치 있는 것은 정확히 누구나 걸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골도, 뜨내기도, 당신이 찾아 헤매던 바로 그것을 들고 온 정직한 이방인도. 초대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열린 광장이 아니라 클럽이다. 개방성이야말로 광장을 생성적이고, 뜻밖의 만남으로 가득하고,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사기꾼을 들여보내는 것도 바로 그 개방성이다.
핵심 역학을 최대한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담고 있으며, 구성원을 확실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공간은 반드시 착취당한다. 이 세 조건, 즉 열린 접근, 방 안의 가치, 허약한 신원은 가끔 겹치는 위험 요인 목록이 아니다.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셋이 모두 성립하는 곳에서 악용은 관리해야 할 가능성이 아니라 소화해 내야 할 확정 사실이다. 남는 질문은 악용이 어떤 형태를 띠느냐뿐이고, 그 형태는 그 순간 방 안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냐가 결정한다. 콘서트 관객으로 가득한 방에서 그는 위조 티켓을 판다. 투자자로 가득한 방에서는 가짜 토큰을 판다. 화술은 바뀌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의 광장은 그 앞에서 실제로 무방비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 대비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진짜 광장에서 사기꾼은 아무도 적어 놓지 않았고 아무도 의도적으로 집행하지 않는 조용한 제약들 아래에서 움직인다. 그에게는 몸이 하나뿐이다. 한 번에 한 곳에만 있을 수 있다. 오늘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과 같고, 지난주에 누군가를 속인 얼굴은 이번 주에 그 사람이 기억하고 손가락질할 얼굴이다. 상인들은 매일 같은 좌판에서 일하며 누가 골칫거리인지 알게 되고, 단골은 단골을 알아본다. 평판은 좋든 나쁘든 사람에게 들러붙는다. 들러붙을 수 있는 지속적인 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장은 몸이라는 단순한 물리 법칙을 통해 스스로를 단속한다. 불완전하지만 끈질기게. 인간 한 명, 연속된 신원 하나, 그리고 공동체가 그 신원에 붙여 두고 이어 갈 수 있는 기억. 쌓여 버린 악명에서 사기꾼이 벗어날 유일한 길은 아직 그를 만나 본 적 없는 광장으로 몸소 이동하는 것뿐이다. 옆 동네로, 다음 마을로, 다음 장날로. 그리고 그 이동은 느리고, 비싸고, 유한하다. 자기 얼굴에 대한 소문보다 빨리 자기 얼굴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그 물리 법칙을 걷어내 보자. 사기꾼에게 매 분 새 얼굴을 쓸 힘, 만 개의 방에 동시에 앉아 있을 힘, 떠난 바로 그 순간에 완전한 타인이 되어 되돌아올 힘을 쥐여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조금 더 유능해지는 정도가 아니다. 방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갖고 있던 유일한 메커니즘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열린 온라인 광장이 모든 참여자에게, 공짜로, 기본값으로 건네주는 힘이 정확히 그것이다. 인터넷이 부순 것은 어떤 특정 기능이 아니었다. 애초에 평판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몸이라는 조용한 물리 법칙이었다.
인터넷은 이것을 발명하지 않았다. 산업화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온라인 스캠을 이야기할 때 마치 그것이 이메일과 함께 시작된 것처럼, 어느 해 어느 특정 메시지가 닫혀 있던 문을 연 것처럼 말하곤 한다. 원치 않는 대량 메시지가 산업적 규모에 도달한 것은 분명 네트워크와 함께였다. 최초로 기록된 사례는, 발신자 이름까지 포함해서, 다음 장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밑에 깔린 수법 자체는 어떤 네트워크보다도 오래됐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방을 공략하는 한 명의 작업자는 인류 최초의 열린 모임과 함께 등장했다. 네트워크는 수법을 바꾸지 않았다. 세 개의 숫자를 바꿨다. 첫째는 도달 범위다. 광장에서 일하는 사기꾼은 한 번에 광장 하나만 공략할 수 있었고, 광장에는 그가 한 번에 한 사람씩 대화로 접근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람밖에 없었다. 온라인 광장에는 수백만 명이 있고, 메시지 하나가 키를 누르는 시간 안에 그들 모두에게 닿는다. 둘째는 비용이다. 물리적 광장을 공략하려면 시간과 이동, 그리고 자기 얼굴을 알아볼지 모르는 군중 앞에 노출되는 위험을 치러야 했다. 온라인에서 천만 명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비용은 한 명에게 보내는 것과 같다. 거의 공짜다. 셋째는 신원이고, 신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숫자다. 물리적 광장에서 사기꾼에게는 몸 하나, 얼굴 하나, 목소리 하나가 있었다. 온라인에서 그는 누구든 될 수 있고, 모두가 될 수 있고, 만 명의 누군가가 동시에 될 수 있다. 저마다 다른 이름과 다른 얼굴로,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이 세 숫자, 즉 무한한 도달, 0에 가까운 비용, 공짜에 무제한인 신원을 나란히 놓으면 스캠 경제의 경제 논리 전체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특정한 누구도 아니면서 원하는 누구든 될 수 있는 채로, 공짜로, 모두에게 닿을 수 있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모두에게, 끊임없이, 먹히는 화술이면 무엇이든 들고 접근하는 것이다. 열에 하나의 응답률도, 천에 하나도, 백만에 하나도 필요 없다. 시도 한 번의 한계 비용이 0으로 수렴하면, 정직한 사업이라면 파국적 실패로 여길 응답률도 스패머에게는 순이익이다. 당신이 받는 스캠이 그토록 뻔하게 멍청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 메시지는 당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천만 명 중 응답할 만큼 순진한 단 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고, 나머지 9,999,999명에게 닿는 데 아무 비용도 들지 않았으니, 그들의 경멸은 공짜다. 확장되는 멍청함이 확장되지 않는 영리함을 이긴다.
이 문제를 처음 따져 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서 틀린다. 스팸이 멍청한 것은 스패머가 멍청해서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스팸이 멍청한 이유는 멍청함이 '최적'이기 때문이다. UC 샌디에이고와 버클리에서 나온 유명한 2008년 연구, 크리스 캐니치(Chris Kanich)와 동료들의 "스팸애널리틱스(Spamalytics)"는 스톰(Storm) 봇넷에 잠입해 실제 전환율을 측정함으로써 이를 구체적인 숫자로 만들었다. 그들이 관찰한 의약품 판매 캠페인의 전환율은 메시지 1,200만 통에 한 건 수준이었다. 1,200만 통에 한 건. 지구상 어떤 합법적 기업도 그런 깔때기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스패머들은 그것으로 번창했다. 그 1,200만 통이 공짜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케팅 실패담이 아니다. 비용이 0이 되고 신원이 무한해질 때 무엇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세 숫자 안에는 더 깊은 비대칭이 숨어 있고, 그것이 이 책의 모든 방어전을 규정하게 된다. 공격자는 시도당 비용을 치르고, 그 시도당 비용은 대략 0이다. 방어자는 '방어'당 비용을 치르는데, 방어자의 비용은 고집스럽게 현실적이다. 엔지니어, 인프라, 학습 데이터,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원인 인간의 주의력. 공격자는 하룻밤 사이에 거의 공짜로, 그러니까 약간의 컴퓨팅과 일회용 계정 한 무더기 값으로 새 시도 백만 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방어자는 어떤 값을 치러도 하룻밤 사이에 새 방어 백만 개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게임은 기초 산수 수준에서 이미 조작되어 있다. 공격 비용은 0을 향해 떨어지는데 방어 비용은 인간의 노력과 판단이라는 가격표에 닻을 내리고 있다. 자릿수가 몇 개씩 차이 나는 이 불균형의 구조는 책 뒷부분에서 따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비대칭의 모든 항이 어디로 거슬러 올라가는지 보라. 도달이 싼 것은 네트워크가 메시지를 공짜로 실어 나르기 때문이다. 시도가 싼 것은 전송에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명의 공격자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수백만 건의 시도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탐지되고 밴당하고 차단되기를 수없이 반복해도 전혀 느려지지 않고 살아남게 해 주는 것은, 신원이 공짜이고 쓰고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패머의 계정을 차단해도 그는 몇 초 만에 새 계정으로 돌아온다. 새 계정을 찍어 내는 데 아무 비용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캠 경제의 어느 실을 잡아당겨도 결국 이 경첩으로 이어진다.
스팸과 스캠은 증상이다. 병의 근원은 신원의 부재다
이제 이 분야 전체가 20년 동안 두지 않은 수, 그리고 이 책의 뼈대가 되는 수로 넘어간다. 거의 모두가 이 문제를 '콘텐츠' 문제로 다룬다. 플랫폼도, 보안 업체도, 연구자도, 커뮤니티를 깨끗하게 지키려 애쓰는 선의의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추론 과정은 직관적이다. 피해는 메시지의 형태로 도착한다. 스팸 폭탄, 피싱 링크, 사칭범의 친근한 DM, 가짜 고객지원 상담원, 믿기 어려울 만큼 후한 무료 증정 사기(giveaway scam), 로맨스 스캠의 다정한 첫 문장. 그러니 할 일은 나쁜 메시지를 식별해서 막는 것이다. 분류기(classifier)를 만든다. 알려진 악성 사례로 학습시킨다. 들어오는 메시지마다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높은 것을 차단한다. 이메일 스팸 필터링의 아키텍처 전체가 이것이고, 플랫폼 모더레이션(moderation)도, 커뮤니티 관리자라면 누구나 제일 먼저 손을 뻗는 키워드 금지와 링크 차단도 마찬가지다. 메시지를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접근이다.
이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메시지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팸은 이 병의 가장 시끄러운 증상이고, 사기는 가장 비싼 증상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전체 스펙트럼, 지나가며 던지는 링크부터 끈질긴 사칭, 딥페이크로 빚어낸 창업자까지, 전부 하나의 더 깊은 조건에서 흘러나온다. 방이 자기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 증상을 치료하면 병은 계속 새 증상을 만들어 낸다. 하나하나가 직전 증상을 잡으려고 세운 방어를 비껴가도록 빚어진 채로. 키워드를 차단하면 스패머는 단어를 바꾼다. 도메인을 차단하면 새로 등록한다. 그의 메시지 모양을 학습하면 그는 모양을 바꾼다. 방어를 하나 세울 때마다 그에게 정확히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셈이고, 바꾸는 데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붙은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비용은 그의 현재 메시지에만 붙어 있는데, 그에게는 무한한 메시지와 그것을 보낼 무한한 자아가 있다.
여기서 구별을 날카롭게 세워 두자. 이 책 전체가 도는 경첩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 도착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든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이것은 무엇인가?'다. 이 메시지는 스팸인가, 이 링크는 악성인가, 이 이미지는 스캠인가. 둘째는 '이것은 누구인가?'다. 어떤 계정이 보냈는가, 그 계정의 이력은 무엇인가, 전에 무엇을 했는가, 다음에 무엇을 할 가능성이 높은가. 오늘날 널리 쓰이는 모든 방어는 첫 번째 질문에 답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책의 논지는, 첫 번째 질문은 그것만 떼어 놓고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며, 애초에 중요했던 질문은 두 번째뿐이라는 것이다.
질문을 바꾸는 순간 불가능한 문제가 얼마나 하찮아지는지 지켜보라. "이 프로젝트 한번 봐 봐, 마음에 들 것 같은데"라는 메시지를 놓고 보자. 콘텐츠 문제로, 그러니까 '이것은 스팸인가?'로 물으면 답이 없다. 단어들은 결백하고, 어디에나 있고, 진짜 친구라면 정확히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신원 문제로 물어보자. 누가 보냈는가? 답이 "3년째 존재해 온 계정, 이 커뮤니티의 수백 명과 교류해 온 계정, 악성 링크를 단 한 번도 올린 적 없는 계정,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 창업자가 줄곧 써 온 바로 그 계정"이라면, 그 메시지는 거의 확실히 문제가 없다. 그리고 단어 하나 읽지 않고도 그 사실을 알았다. 답이 "11분 전에 만들어진 계정, 이력이 없고, 표시 이름과 사진을 한 시간 전에 창업자와 똑같이 바꿨으며, 지난 10분 동안 400명에게 이 동일한 메시지를 보낸 계정"이라면, 그 메시지는 거의 확실히 공격이다. 이번에도 단어를 읽지 않고 알았다. 콘텐츠에는 신호가 전혀 없었다. 신호는 전부 신원이 싣고 있었다. 분류기는 상황 전체에서 결백해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딱 한 부분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모든 것을 폭로하는 부분은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거의' 안에는 정직한 단서 두 개가 숨어 있다. 신뢰받는 계정은 도난당할 수 있다. 프롤로그의 피해자는 정확히 그런 계정, 오래되고 진짜이며 다만 그날 오후 주인의 손에 있지 않았을 뿐인 계정이 보낸 메시지에 100만 달러 넘게 잃었다. 그리고 충분히 참을성 있는 공격자는 값싼 물량 공세가 굳이 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다. 몇 년에 걸쳐 착하게 굴며 배신할 가치가 있는 평판을 쌓은 뒤, 단 하루에 현금화하는 것이다. 스패머가 아니라 잠복 요원이고, AI 시대에는 그 잠복 요원 뒤에 사람이 있을 필요조차 없다. 이 둘은 실재하고, 책의 후반부는 계속 이 둘로 되돌아온다. 다른 모든 것이 해결된 뒤에 남는 것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무엇이 '아닌지'에 주목하라. 이들은 물량이 아니다. 이런 방들을 익사시키는 물량의 압도적 대부분은 쓰고 버리는, 이력 없는, 생긴 지 몇 분짜리 계정이고, 그 범주 전체, 그러니까 스팸을 하나의 산업으로 만들어 주는 부분은 '이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아예 살아남지 못한다. 비싸고 끈기 있는 공격은 그 질문을 견뎌 낸다. 값싸고 무한한 공격은 견디지 못한다. 콘텐츠에서 신원으로 옮겨 간다고 개별 메시지에 대한 확실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일어난다. 한계가 없던 문제가 한계가 있는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방금 쓴 단어 하나를 정확히 해 두고 싶다. 책이 끝날 때까지 쓸 단어인데, 사람마다 다른 뜻으로 쓰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신원'은 법적 이름도, 여권도, 정부 서류에 붙은 얼굴 사진도 아니다. 그보다 좁고, 우리 목적에는 더 강력한 어떤 것이다. 지속적이고, 만드는 데 비용이 들며, 이력이 들러붙을 수 있는 손잡이. 방의 관점에서 사기꾼의 문제는 그의 본명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아무것도 '묶어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적도, 쌓인 신뢰나 불신도, 한 만남에서 다음 만남까지 지속되는 그 무엇도. 가명이라도 괜찮다. 아니, 훌륭하다. '만들기 비싸고 버리기 불가능하기만 하다면.' 열린 온라인 광장의 재앙은 익명성 그 자체가 아니다. 신원이 공짜이고, 무한하고, 쓰고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 될 수 있고, 여럿이 될 수 있고, 한 신원이 악명을 얻으면 그냥 내다 버리고 비용 없이 새로 찍어 내면 된다. 그것이 병이다. 정확히 그것이.
그리고 열린 광장이 낯선 이들을 구별하기로 그냥 '결심'할 수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게으름도 아니고, 누군가 깜빡하고 안 만든 기능도 아니다. 법칙에 가까운 무엇이다. 방어가 마침내 훌륭해졌다고 치자. 방 안의 행동, 그러니까 메시지의 타이밍, 연결의 패턴, 활동의 모양을 들여다보고 '이 열 개 계정은 전부 스팸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정확하게 결론 내리는 영리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치자. 열 개를 전부 차단한다. 이제 이 접근 전체를 부수는 질문을 던져 보자. 그 열 개는 '정말로' 몇 개의 계정이었나? 열 명의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면 커뮤니티를 청소한 것이다. 열 개의 얼굴을 쓴 한 사람이었다면 거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열한 번째 얼굴의 비용이 0이고, 열두 번째도, 천 번째도 그렇기 때문이다. 차단한 것은 하나의 병이 만든 열 개의 증상이다. 행위자는 유유히 걸어 나갔다.
2002년, 존 두서(John Douceur)라는 컴퓨터과학자가 이를 정밀하게 정식화한 논문을 냈고, 그 논문이 이 문제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결과는 책 뒷부분에서 제 무게에 걸맞은 분량으로 다룰 것이다. 골자는 이렇다. 신원을 보증해 줄 신뢰할 수 있는 권위가 없는 열린 시스템에서는, 참여자 한 명이 사실상 무제한의 서로 다른 신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계는 오직 그가 쓰기로 마음먹은 자원뿐이다. 그는 이렇게 제조된 신원들을, 유명한 다중인격 사례의 이름을 따서 '시빌(Sybil)'이라 불렀고, 한 행위자가 여럿으로 나타나는 공격을 시빌 공격(Sybil attack)이라 불렀다. 그리고 따름정리가 있다. 행동을 아무리 관찰해도, 여러 개로 보이는 신원들을 그 뒤에 선 한 행위자로 확실하게 접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조건부이지 우주의 법칙은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권위를 도입하거나 신원 하나하나에 실질적인 비용을 붙이면 결론은 느슨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어 놓은 열린 광장에는 둘 다 없고, 그 조건 아래에서 낯선 이들은 정말로 구별되지 않는다. 행위자 대신 메시지를 심판하는 모든 방어는, 구조적으로, 증상과 싸우는 것이다. 그동안 행위자는 무궁무진한 새 얼굴의 재고 뒤에 멀쩡히 서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전쟁이, 싸우는 사람들에게 이길 수 없는 전쟁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잘못된 질문에 답하고 있고, 잘못된 질문에는 답이 없다.
텔레그램은 특수 사례가 아니라 가장 날카로운 사례다
나는 이 책을 텔레그램을 무대로 삼아 쓰고 있고,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해 두어야겠다. 무대를 주제로 착각하지 않도록. 텔레그램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니다. 열린 광장의 유구한 역학이 가장 극단적이고 가장 교훈적인 형태로 발현된 장소일 뿐이다. 이유는 세 가지이고, 처음에 제시한 세 조건에 정확히 대응한다.
첫째, 가장 열려 있다. 텔레그램 슈퍼그룹은 최대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고, 채널 청중에는 상한이 없다. 링크 공유에는 마찰이 없고, 참여는 탭 한 번이며, 플랫폼은 열린 광장이 상징하는 바로 그 무허가적 도달을 중심으로 자기 문화를 쌓아 올렸다. 둘째, 방 안의 가치가 가장 크다. 텔레그램은, 나중에 추적할 이유들로, 암호화폐 세계의 운영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크립토 커뮤니티란 낯선 이들이 주머니에 이전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고, 익명인 크립토를 넣고 다니는 광장이다. 셋째, 주요 플랫폼 가운데 역사적으로 자체 신원이 가장 허약하다. 텔레그램 계정은 전화번호 하나이고, 전화번호는 싸고, 빌릴 수 있고, 산업적 규모로 쓰고 버릴 수 있다.(옮긴이 주: 한국 독자에게는 대포폰이 굴러가는 방식 그대로다.) 표시 이름과 사진은 임의로,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계정이 거쳐 가는 커뮤니티들 사이를 함께 따라다니는 지속적이고 이동 가능한 평판이라는 개념은 내장되어 있지 않다. 최대의 개방성, 최대의 가치, 최소의 신원. 그 결과는, 프롤로그의 차단 통계가 암시했고 18장에서 제대로 셈하겠지만, 실질적인 신원의 하한선을 갖춘 플랫폼이라면 결코 필요로 하지 않을 규모의 단속이다. 열린 광장 문제가 최대 강도로 작동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할 실험실을 일부러 설계한다 해도, 이보다 나은 곳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텔레그램'이라는 폴더에 정리해 넣고 싶은 유혹은 참아야 한다. 세 조건이 성립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같은 병이 다른 모양의 증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 초대 링크와 방대한 크립토·게임 커뮤니티를 가진 디스코드는 똑같은 공짜 신원 떼와 싸운다. 형태는 다르다. 웹훅 악용, 레이드 봇, 서버 초토화. 그러나 구조는 동일하다. 왓츠앱은 명목상 전화번호에 묶여 있는데도, 투자 사기와 로맨스 스캠의 물결 뒤에서 대량 번호와 숙성 계정(aged account)의 지하 경제가 통째로 돌아간다. X는 누가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매일의 공개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이메일은 30년째 한 가지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싸움의 핵심은 메시지가 주장하는 발신자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방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도 다르다. 병은 하나다. 열린 접근, 방 안의 가치, 허약한 신원.
여기서 처리해 둘 만한 솔깃한 반론이 하나 있다. 신원이 문제의 뿌리라고 주장할 때마다 나오는 반론이다. 이렇게 흘러간다. 하지만 X가 인증을 시도했고, 실패하지 않았나. 그러니 신원은 답이 아니다. X가 누가 진짜인가라는 질문에 막대한 에너지와 대중의 관심을 쏟은 것은 사실이고, 그 결과가 대체로 엉망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X가 '무엇을' 인증했는지 자세히 보라. 교훈은 정밀하고, 반론이 끌어내는 그 교훈이 아니다. 파란 체크마크는 유료 상품이 된 순간부터 누군가 돈을 냈다는 사실을 인증했다. 지속적인 평판을 인증하지 않았고, '새' 신원을 만드는 비용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올리지 않았으며, 커뮤니티가 신뢰하고 이어 갈 수 있는 방식으로 계정에 이력을 묶지도 않았다. 그것이 답한 질문은 "이 사람이 우리한테 돈을 냈는가?"였다. "이 사람은 누구이고, 평판은 어떠한가?"가 아니다. 결제를 확인하면서 신원은 값싼 채로, 평판은 부재한 채로 내버려 두는 인증 시스템은 신원 논지의 반례가 아니다. 오히려 확증이다. 신원을 '잘못' 다루는 것, 그러니까 엉뚱한 것을 인증하고, 실질적인 비용을 붙이지 않고, 이동 가능한 평판을 담아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논지가 예측하는 그대로다. 나쁜 구현의 실패는 아이디어에 대한 반증이 아니다. 그 아이디어를 잘 구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증거이고,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이 책이 상당한 분량을 들여 진지하게 다룰 문제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질 장들에서 스캠 경제가 텔레그램 커뮤니티 안에서 자라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것을 전기가 아니라 사례 연구로 읽어 주기 바란다. 텔레그램이 렌즈인 이유는 이 현상을 가장 높은 배율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현상 자체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오픈 커뮤니티,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오픈 커뮤니티에 관한 것이다.(옮긴이 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떠올린 독자라면 정확히 짚은 것이다.) 이 현상을 낳는 조건들은 어느 플랫폼의 버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방성 그 자체의 대가다.
그러면 당연한 질문이 남는다. 병이 구조적이라면, 그러니까 최초의 광장 때부터 열린 광장에 새겨져 있었고 2002년에 한 연구자가 정확한 이름까지 붙였다면, 왜 아무도 뿌리를 치료하지 않았는가? 정직한 답은, 오랫동안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초기의 열린 광장들, 메일링 리스트와 포럼과 채팅방도 이 병을 고스란히 앓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에 든 것은, 앞으로 올 것의 기준으로 보면, 거의 무가치했다. 사기꾼이 팔던 것은 짝퉁 시계와 건강보조제, 그리고 발이 묶인 왕자의 재산 반출을 도울 기회였다. 푼돈을 놓고 벌이는 숫자 게임이었다. 그 시대에도 진짜 위험한 사기는 존재했다. 은행 로그인을 탈취하는 피싱, 부주의한 클릭 한 번에 들어와 계좌를 비우는 트로이목마. 그것들은 실제 돈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 돈에 닿는 경로는 은행을 통해서였고, 이메일과 웹 위에서였고, 지불 취소와 사기 대응 창구와 회수 가능 기간이 있는 시스템 안에서였다. 그런 사기가 열린 방 안에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열린 방은 사람을 '꾀어내는' 곳이었지, 털어 갈 금고가 아니었다. 방 안의 판돈이 그 정도로 낮을 때는 공격자를 그저 '귀찮게' 만드는 방어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구조적 치료법, 즉 열린 문 앞에 비용과 마찰을 세우는 처방은, 애초에 커뮤니티를 가입할 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는 바로 그 개방성을 거스른다. 제정신인 커뮤니티라면, 구성원에게 몇 달러와 약간의 짜증을 안기는 문제를 잡겠다고 마찰 없고 환대하는 정문을 내다 팔지 않는다. 새는 방어는 실수가 아니었다. 주어진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이었다. 그런데 그 질문이 곧 훨씬 나쁜 질문으로 교체될 참이었고, 낡은 답은 검증받지 않은 채 그대로 실려 가, 파국적으로 틀린 답이 되어 버리는 세계로 넘어갔다. 최초의 메일링 리스트부터 오늘날 가장 큰 플랫폼의 가장 큰 채널까지, 모든 오픈 커뮤니티에는 도착하는 모든 메시지 밑에 늘 같은 단 하나의 질문이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 이 방에 누가 있는가?'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지냈다. 질문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판돈이 낮아서, 틀린 답의 대가가 크지 않았을 뿐이다.